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있었다.
남 다르게 느릿느릿 걷던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그 아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댔다.
아무도 그 아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또래들은 항상 저만큼 먼저 뛰어갔고,
그 아이가 그만큼을 걸어 갔을 땐,
하루 해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이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날개가 있어 하늘을 난다면,
빠를 수 있을까하고,
그렇지만 느림보는 파일럿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소방차를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면,
빠를 수 있을까하고,
그렇지만 느림보는 소방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는 우체부가 되고 싶었다.
어깨에 가득 누군가가 기다리는 편지를 메면,
빠를 수 있을까하고,
그렇지만 느림보는 우체부도 될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는 청소부가 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느릿느릿 길을 쓸었다.
바쁘게 지나쳐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쓸어 담았다.
느릿느릿.

세월이 흘러 흰 수염이 덥수룩해진 어느 날,
아이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서,
굽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누군가 벌써 쓸어놓은 듯, 
눈부시게 깨끗한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 속 에는,
그 동안 아이가 쓸어 담았던 온갖 것들이 별처럼 매달려있었다.
바쁜 사람들이 흘리고 간 동전들과 연필과 시들은 꽃 한 송이,
다시 찾으러 오지 않는 그들의 자부심 가득한 명함까지도…

그 뿐만이 아니라,
느릿느릿 걸으며 보았던 어릴 적 학교 길 가의 나뭇잎들도,
이상스레 툭 튀어 나와 있던 짓궂은 돌멩이들도,
뛰어가던 친구들의 등뒤에서 덩실덩실 
춤추던 도시락가방,
그 뒤로 미안 하다는 듯 빨개 지던 저녁노을도,
모두 그 하늘 속에서 마치 빛으로 그려진 듯이,
환하게 그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해가 져버려서 못 보기 전에 어서 저 예쁜것들을 그려둬야지.
그렇게 생각한 아이는,
모아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작은 연필 하나와 찢어진 종이 한 장을 찾아,
그곳에 하나 둘 담아가기 시작 했다.
동전을 담고, 연필을 담고, 시든 꽃 한 송이를 담고, 명함을 담았고,
추억을 담고 시간들을 거의 다 담았을 때,
아이의 얼굴에는 적잖은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와. 아직도 해가 저물지 않았어!

그때부터 그 아이는 빗자루 대신,
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적어가기 시작 했다.
느릿느릿 평생을 걸으면서 머릿속 가득히,
반짝이는 것들을 모아 두었던 그 아이는,
아름다운 시를 짓는 시인이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그것들을 속속 써 내려 갔다.

-才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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