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4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4주 
제목: 어린이 날의 의미

이켜보면 어릴 적 한국의 5월은 크고 작은 행사들로 가득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어린이 날 선물을 기다리며 설레던 마음이다. 그 날이 지나고 나면 어버이날 그리고 또 며칠 후에는 스승의 날이 왔었다. 아직도 한국의 어린이들은 카네이션을 만들어 어른들께 달아드릴까?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하며 교정이 떠나가라 합창을 할까?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는 어린이날을 쇠어본 기억이 없다. 올해 독일의 5월5일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날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날은 항상 가톨릭의 „예수승천 대 축일“과 맞물리기 때문에 매년 그런 것은 아니다.    부활절 방학이 지난 후 독일의 5월은 비교적 조용한 한 달이다. 하지만 떠들썩할 수도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는 날이 하루 있긴 하다. 바로 5월 8일, 나치 독일의 패망일 이다. 
   1945년 5월 8일 23시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당시 7살이었던 헬가 드류스는 베를리나 모르겐포스트지에 그때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폐허가 된 도시는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몰랐지만 우리는 잿더미가 된 보석가게에서 진주를 찾으며 놀았습니다. 빵 가게에서는 돌가루로 케이크를 구웠죠. 너무 슬펐던 일은 할아버지 댁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내 장난감 유모차가 타버렸던 일입니다. 그래서 인형은 항상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녔죠.

   7살 동갑내기였던 균터 라이퍼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군의 지휘에 따라 빵을 굽는 곳이 생겼죠. 그러나 미처 정돈 되지 못한 거리는 그대로였습니다. 여기저기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죠. 어머니는 빵을 사기 위해서 오랫동안 줄을 서 기다리곤 하셨어요. 그 동안 나는 그 옆에서 놀았죠. 그러다가 잘린 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주워 올렸습니다. 깨끗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른 어머니께 달려가 보여드렸습니다.

   이 기사들을 읽으며 어른이 된 내 마음은 7살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터로 끌려 들어갔었다. 전쟁과 어린이, 참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가슴 아픈 두 단어의 조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과 어린이날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활짝 웃으시며 멋진 선물을 건네주실 때 우리에게 세상에는 기쁨 밖에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어린이날의 주인공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 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아이들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누구든 최선을 다하지만 인생이 조금만 힘겨워져도 금세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 또 아이들이다. 하물며 전쟁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어른들의 이기였다. 혹시나 위험한 곳에 서 있지는 않은지,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지고 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이 한번쯤은 아이들을 돌아보라는 날, 이것이 어린이날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2016년 4월 27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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