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6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6주 
제목: 베를린 클룽커크라니히

1992년 리우회의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이후로 생태도시, 에코시티 등의 개념이 널리 퍼지면서 지붕녹화와 같은 형태의 생물 다양성 생태도시 조성을 위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에서도 2015년 Die Grünen(녹색당)이 1000개의 지붕을 녹색으로 물들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기도 했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올해 다시 CDU(기민련)소속 슈테판 에버스가 2030년까지 베를린을 녹색지붕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행정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녹색지붕을 만드는 이유가 노스탤지어나 도시 미관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효과만 보더라도 지붕 위에 덮인 토양층이 많은 양의 수분을 흡수해 저장하고 그것이 천천히 증발됨에 따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 하수도로 유입되는 빗물의 양을 줄여 범람을 방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붕을 녹화하는 것만으로 어디서나 이러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기후, 토양, 강수량 등에 따라 때로는 큰 예산 낭비를 초래 할 수도 있다. 결국 녹색 지붕 사업은 „녹색“보다는 먼저 „지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붕이나 옥상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잘“ 활용할 수 있을까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슈테판 에버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베를린에 이런 곳을 많이 만드는 것“ 이라며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클룽커크라니히“(http://klunkerkranich.de) 라는 곳을 구체적인 예로 들기도 했다.

   클룽커크라니히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쇼핑몰 옥상에 자리 잡은 조금은 색다른 종합 문화 공간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던 멋들어진 지붕녹화의 예를 떠올렸다면 그 첫인상에 조금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삐걱거리는 탁자에 작은 공연장, 꼬마 손님들을 위한 모래놀이터와 소박한 화단, 그리고 커다란 고양이 얼굴이 간판을 대신하는 허름한 바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일주일 내내 저녁 시간을 물들이는 재즈나 팝 등의 음악 공연은 물론이고 주중에 열리는 원예 강좌나 천연염색 워크숍에는 사람들이 만원이라 때로는 예약이 필수라 한다. 주말에는 하늘을 지붕 삼아 중고 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주말 저녁이면 음악 공연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잔잔한 베이스 색소폰 선율과 함께 시작된 해넘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내리쬐는 햇빛과 나무 판을 더덕더덕 덧대어 만든 이곳저곳의 모습이 사람들의 편안한 얼굴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베를린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특별한 관리 계획도 없이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거창한 볼거리에 열광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모이고 누구나 잠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무대가 되고 청중들에게는 흥을 선사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겠다는 젊은이들의 이상이 한 정치가에 의해 현실이 되어가는 곳, 참 베를린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중충하고 볼거리 별로 없다는 이 도시를 찾는 젊은이들이 한번쯤 들러보면 어떨까 싶다.

2016년 5월 26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5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5주 
제목: 우리가 꿈 꿀 때

일의 직업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는 물론 기간도 짧고 업무를 배운다기 보다는 견학을 하는 정도로 마무리 되지만 7학년이 되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쓰기 교육이 끝나면 그 이후부터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회사나 기관에 직접 이력서를 제출해 실습 자리를 얻어내야 한다.

   자리를 얻는다는 것이 어떤 아이들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우리 작은 아들한테는 참 힘들고 고된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나 거두절미하고 남은 본론마저도 간단명료하기가 그지없으니 면접 기회 한번 얻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자리를 못 구해서 할 수 없이 원하지 않는 곳까지 지원을 하더니 결국은 자동차 정비소에 일자리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다른 엄마들은 나이에 비해 힘든 일자리라고 걱정했고 그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달리 도움을 줄 방법도 없었다. 첫 출근 날 아이와 함께 가서 일터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온 것이 전부였다. 정비소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기계들이 즐비했고 벽마다 수십 개의 타이어가 걸려있었다. 작업복에 작업화까지 의무적인 위험한 곳에 열네 살짜리를 남겨두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눈앞에 아이가 어른거려서 아마도 수 십 번은 길을 잘 못 들어섰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이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부품 교체를 도왔다고 했다. 부지런히 저녁을 차려놓고 옆에 앉아 눈치만 살피고 있자니 몇 숟가락 넘기자마자 결국 참았던 울분을 토하듯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 내일 또 가야 되지? 나 이러다가 일주일 지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다른 엄마 같았으면 이럴 때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서로 똑 같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나는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내일 또 가야 되느냐고 되물었다. 죽을 것만 같던 우리의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실습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작업복에 작업화를 질질 끌고 시커먼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오늘 공장에 어떤 한국 사람이 왔었어. 타이어가 펑크 나서 내가 갈아 드렸어. 
   “어머! 네가 타이어도 갈 줄 알아?” 
   “그럼. 공장에서 이제 타이어는 나 혼자 갈아.
   그리고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저녁 식사 중에 아이가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나 파일럿이 되면 어떨까? 도(친구)있잖아. 도가 전부터 자기도 타이어 한번 갈아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러더니 결국 비행기 정비사가 되겠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나는 파일럿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같이 일 할 수도 있고…… 어때 엄마?”
열네 살 인생, 첫 꿈에 부푼 눈동자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2016년 5월 11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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