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5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5주 
제목: 우리가 꿈 꿀 때

일의 직업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는 물론 기간도 짧고 업무를 배운다기 보다는 견학을 하는 정도로 마무리 되지만 7학년이 되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쓰기 교육이 끝나면 그 이후부터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회사나 기관에 직접 이력서를 제출해 실습 자리를 얻어내야 한다.

   자리를 얻는다는 것이 어떤 아이들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우리 작은 아들한테는 참 힘들고 고된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나 거두절미하고 남은 본론마저도 간단명료하기가 그지없으니 면접 기회 한번 얻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자리를 못 구해서 할 수 없이 원하지 않는 곳까지 지원을 하더니 결국은 자동차 정비소에 일자리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다른 엄마들은 나이에 비해 힘든 일자리라고 걱정했고 그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달리 도움을 줄 방법도 없었다. 첫 출근 날 아이와 함께 가서 일터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온 것이 전부였다. 정비소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기계들이 즐비했고 벽마다 수십 개의 타이어가 걸려있었다. 작업복에 작업화까지 의무적인 위험한 곳에 열네 살짜리를 남겨두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눈앞에 아이가 어른거려서 아마도 수 십 번은 길을 잘 못 들어섰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이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부품 교체를 도왔다고 했다. 부지런히 저녁을 차려놓고 옆에 앉아 눈치만 살피고 있자니 몇 숟가락 넘기자마자 결국 참았던 울분을 토하듯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 내일 또 가야 되지? 나 이러다가 일주일 지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다른 엄마 같았으면 이럴 때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서로 똑 같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나는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내일 또 가야 되느냐고 되물었다. 죽을 것만 같던 우리의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실습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작업복에 작업화를 질질 끌고 시커먼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오늘 공장에 어떤 한국 사람이 왔었어. 타이어가 펑크 나서 내가 갈아 드렸어. 
   “어머! 네가 타이어도 갈 줄 알아?” 
   “그럼. 공장에서 이제 타이어는 나 혼자 갈아.
   그리고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저녁 식사 중에 아이가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나 파일럿이 되면 어떨까? 도(친구)있잖아. 도가 전부터 자기도 타이어 한번 갈아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러더니 결국 비행기 정비사가 되겠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나는 파일럿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같이 일 할 수도 있고…… 어때 엄마?”
열네 살 인생, 첫 꿈에 부푼 눈동자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2016년 5월 11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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