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8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8
주 제목: 마이바흐우퍼 재래시장2

시의 삶 속 재래시장은 시장 그 이상의 곳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재래시장에 나와 제 철 맞은 과일이나 채소를 보며 지갑을 열까 말까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득 내 나이를 다시 세어보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끔은 재래시장에서 본 이런저런 모습들이 사진처럼 찍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기도 한다. 한 줌 콩나물을 사느라 마주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떡 하나 더 주시던 아주머니의 손짓이 어느새 내 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와 있다.

   마이바흐우퍼 터키시장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들어가는 길이 끝나고 나오는 길이 시작되는 바로 그곳에 있는 고등어구이 샌드위치가 아닌가 싶다.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고등어구이 냄새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시장 깊숙이까지 끌어들이니 말이다. 

   고등어구이 샌드위치는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가장자리가 바삭 해진 고등어에 소금과 레몬즙으로 간을 맞추고 야채를 곁들여 긴 빵에 끼워 먹는 음식이다. 오늘도 그 모습에 배가 먼저 요동을 치는걸 보니 내 점심메뉴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독일 사람들 중에는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냄새에 이끌려 그곳까지 와서는 들여다보고 선뜻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아무 거리낌 없이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하는 나를 오늘도 한 아주머니가 신기한 듯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한편, 바로 옆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먼저 온 이가 마치 옹달샘이라도 찾은 듯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달려온 친구들의 얼굴은 석쇠를 보자마자 이내 어린아이 같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시끌벅적 수다를 떨어가며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금방이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긴 하지만 사람 냄새와 함께 숯불 냄새를 흠뻑 뒤집어 쓸 수 있어서 나는 그 시간이 좋다. 붙임성 좋은 주인아저씨는 오늘 또 나보고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아 한국! 안녕하세요?” 하며 아저씨가 웃는다. 볼 때마다 같은 대답이다. 하긴, 이 재미도 이 고등어구이 샌드위치의 맛에 녹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완성된 빵을 받아 들고 강가 쪽으로 몇 발짝 움직이면 젊은이들의 간이 콘서트 장이 마련되어 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통나무 다리 위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청중들은 모두 바닥에 제멋대로 앉아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다. 그 자유로움 덕분에 나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비린내가 흥을 깰까 싶어 강가 쪽 가장자리를 골랐다. 

   잠시 오리들에게 시선을 뺏긴 사이 터키인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는 고등어구이가 들려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한 입을 베어 무나 했는데, 할머니가 주섬주섬 깔고 앉았던 비닐봉지 중 한 장을 빼내 나에게 내민다. “엉덩이” 비록 말은 그 한 마디 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뜻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계속>

2016년 6월23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슬픔의 하수도 시스템


일 날에는 쏴쏴 비가왔다. 
그가 왔다. 
그가 와서 쏴쏴 말을 걸어 주었다. 
인디언 밥 같은 외로움이 그 목소리에 젖은 듯 부드러워 지는 것 같았다. 

얼마 안가 회색 빛 시멘트가 뽀얀 얼굴을 드러내자
도로 위의 삶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최면에서 깬듯 태연하게 다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빗물이 가듯 슬픔도 가는 길이 이미 구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잠시 나를 적실 뿐.

창문 밖에 날아온 참새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나뭇가지 사이를 돌아다닌다.
그 통통한 배를 보니 가슴이 다시 떨린다.
폴짝폴짝 튀어 오를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면
이야기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베를린 살이7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7주 
제목: 마이바흐우퍼 재래시장1

늘은 재래시장이 서는 날이다. 베를린에는 재래시장이 꽤 활성화 되어있다. 생선, 치즈, 햄 등을 파는 상설 재래시장도 있고 정기적으로 서는 청과물시장도 있다. 오늘 갈 곳은 일주일에 두 번 서는 터키 시장 마이바흐우퍼다.
   섭씨 28도, 때 이른 무더위에 반바지에 슬리퍼 그리고 모자까지 눌러쓰고 나는 집을 나섰다. 한 30분 유유자적 걸어볼 셈이다.

   모퉁이를 돌아 시장 입구에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음악이 있다.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제 7곡 [리모주의 시장]이다. 강가를 따라 펼쳐진 가판대의 하얀 지붕들과 목청껏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노랫소리, 하얀 앞치마 밑으로 잰 걸음을 놓는 터키 아주머니들의 뒷모습, 이 모든 것의 조화가 그 경쾌하면서도 되알진 선율과 꼭 닮았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이 시장을 보는 방법은 어느 쪽이던 한 쪽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늘은 강가 맞은편으로 들어섰으니 먼저 “고깃간”에 들러보자. 내가 이곳을 굳이 “고깃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정육점” 이라고 부르기에는 내가 아는 정육점의 모습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고기의 종류는 딱 2가지, 쇠고기와 양고기뿐이다. 439그램짜리 깔끔한 포장 육 따위는 없다. 무조건 킬로 단위로 판매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1킬로를 달라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1킬로 5유로, 3킬로 10유로, 3킬로 오케이?”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무게 나가는 과일은 그만두고 채소 몇 단 사기도 전에 집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분홍빛 형광등 하나 없이 살점만 가득한 이 으스스한 가게에는 항상 문 밖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고기를 사기 위해서이다. 먼 곳에서 날아왔다는 1등급 3플러스 프리미엄 스테이크를 사러 온 사람은 없다. 단지 베를린 어딘가에서 오늘 공급된 신선한 고기를 사러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1등급 스테이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고기들은 구매자의 오늘 식단과 보는 눈에 달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기를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중고차를 고르듯 진지하다. 고기에는 정말 문외한인 나는 어쨌든 오늘도 무사히 3킬로의 유혹을 뿌리치고 장조림 감 1킬로를 사가지고 만족스레 가게를 나왔다. 

   시장은 때때로 그 어떤 달력보다도 무섭게 나에게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망고, 오렌지, 아보카도 등을 살 계획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 사이 계절이 또 바뀌어 있다. 우리 막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산 오렌지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작고 푸릇푸릇했던 망고는 노랗게 살이 쪄 알아보기도 힘들고 아보카도는 값이 2배로 올랐다. 그 대신 잘 안보이던 멜론이며 수박이 눈에 뜨인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발품을 더 팔아 가는 계절의 끄트머리라도 붙들어 볼까, 아니면 일찌감치 새 것들에게 눈길을 돌려볼까?

   그러는 사이에 배낭은 점점 생각지도 못한 채소들로 채워지고 있다. 마늘잎, 민트, 루꼴라, 가볍고도 여린 것들만 골라 담고 있다. 아무래도 사려던 과일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다. 그래.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좀 더 찾아보기로 하자. <계속>

2016 6월 9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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