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9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9주 
제목: 마이바흐우퍼 재래시장3 (The end of the Maybachufer trilogy)

기 값이 뚝 떨어졌다. 나는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오늘 구매목록에도 딸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앞을 한참 서성였던 이유는 어릴 적 딸기에 대한 추억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에게는 3가지의 딸기가 있었다. 매년 처음 나오는 딸기는 알이 굵고 꼭지부분은 하얀 것이 끝으로 갈수록 빨갛게 여물어 있었다. 위풍도 당당히 줄지어 앉아있던 그 딸기가 어린 내 눈에는 참 맛있게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먹을 때가 아니라며 사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손님이 오실 때면 그 앞에는 어김없이 그 딸기가 포크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정신 없이 딸기를 주워 먹었다가 엄마한테 한번 혼이 난 그날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손님상에 있는 딸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더 이상은 딸기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내 생일이 돌아올 때쯤 되면 두 번째 딸기가 한창이었다. 포장 용기는 온데간데없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수북이 쌓여 있다가 하나 둘씩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기도 하는 두 번째 딸기는 몸 전체가 빨간 대신 덩치는 첫 번째 딸기보다 훨씬 작았다. 매년 생일이면 엄마는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며 접시마다 딸기를 곁들여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실컷 먹으라며 내 앞으로 딸기 접시를 옮겨 주셨다. 

   시장에서 딸기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이면 아저씨들이 딸기 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두 번째 딸기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 부대낀 얼굴이 짓물러 터져있던, 천 원만 내도 보따리 가득 주는데도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 딸기를 이모는 항상 몇 보따리씩 사셨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 며칠을 끓여서 딸기잼을 만들어 주셨다. 식빵 위에서 곱게도 빛나던 그 딸기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더 맛있는 잼을 먹어 본 적도 없다.

   베를린에는 지금 딸기 철의 제2막이 올랐다. 한국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딸기야말로 어린 나에게 일찌감치 비논리를 보여주며 논리를 가르쳐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덕분에 납작한 복숭아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금”키위라는 것이 나왔을 때도 나는 하루 빨리 그 맛을 보려는 사람들 틈에 끼어 고생하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어 가지고 싶지 않고 가질 수 없어 가지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은 업보일까? 
   스산한 독일 날씨에 불쌍히 떨고 있는 용과나 파파야 등의 열대 과일이나 새로운 농업기술발전의 산물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열매는 그냥 아프리카에서 먹으면 안 되나? 저 맛없는 파파야가 파파야나무 밑에서는 얼마나 귀하고도 맛난 열매일까? 욕심, 문득 이 단어가 떠오른다. 한곳에 앉아 온 세상을 만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이 시대의 희망도 어쩌면 우리들의 허황된 욕심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저쪽에 마지막 가게가 보인다. 하얀 옥양목과 빨간 산딸기, 같이 있어 좋을 것 하나 없는 딱 두 가지를 파는 괴짜 아저씨가 주인이다. 저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이 눈앞에 놓여있다. 결국 사려던 오렌지와 망고는 포기해야겠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머나! 아저씨 오늘은 오렌지네요!”

2016년 7월7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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