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14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14주 
제목: 유럽 언어의 날을 맞아

년 9월 26일은 유럽 언어의 날이다. 유럽 연합 안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들을 지키고 보존하며 새로운 언어 습득을 독려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날이다. 곳곳에서 열리는 강연회, 연극, 포럼 등에서 이날만은 그 지역의 사투리가 표준말을 제치고 당당히 모든 행사의 주인공자리를 차지한다.  
   독일에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다.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표준어에 익숙한 귀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이 있다면 단연 Plattdeutsch(플라트도이치)가 아닐까 싶다. 가끔씩 단어가 들리기는 하지만 한 문장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표준어를 일컫는 Hochdeutsch(호흐도이치)Hoch은 높다는 뜻을 가진 반면 플라트도이치의 Platt은 납작하다는 의미를 가진 표준어의 Platt과 철자와 발음이 모두 일치한다. 게다가 플라트도이치가 사용되는 북서부독일과 네덜란드 일부는 비교적 산이 적고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 언뜻 낮은 지방의 독일어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플라트도이치의 Platt의 어원은 납작하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Hoch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만인의 언어 라는 뜻을 지닌다.

   역사적으로 보면 플라트도이치로 기록된 문헌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점차 호흐도이치에 밀려나면서 북부지방의 방언으로 간주되었고 현재까지도 한 가지 문법과 표기법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엄밀히 말해 플라트도이치는 독일의 표준어 호흐도이치의 방언으로 볼 수도 없다. 그 이유는 플라트도이치가 호흐도이치와 마찬가지로 서 게르만어군에서 파생된 언어이기는 하지만 호흐도이치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트도이치와 호흐도이치는 서로가 서로에게 방언인 셈이다.

언어의 날을 맞아 베를린의 각 학교에서도 이런 저런 행사들이 열린 모양이다. 학교에 다녀온 막내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내가 한국 대표로 질문을 받았는데 북한말은 한국말의 사투리야? 아니면 독립된 언어야?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스스로 한 번도 통일된 한국의 표준말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국제적으로 남과 북의 언어가 구분되어 인정받고 있는지 여부도 알지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뭇거리고 있자니 막내가 답답한 듯 대답을 대신하고 나섰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어.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십 년 동안 남한과 북한은 통일된 한반도의 표준어에 대해 논의 해볼 기회가 없었다. 아마 통일이 된다면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말이 사투리라 주장하며 다툴 것이다. 맞아?
   이 글을 읽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막내의 주장에 어떤 설명을 덧붙여 주실지 궁금하다.

   1990년대 말부터 플라트도이치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인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2016년 9월28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13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13
주 제목:"Wir schaffen das"

Wir schaffen das -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8월 31일, 메르켈 총리의 유명한 이 한 마디와 함께 독일의 난민포용정책이 본격화 된지도 이제 일 년을 넘어서고 있다. 물론 이날 메르켈 총리의 기자회견 연설이 이 세 단어로만 구성되었던 것도, 또 특별히 이 세 단어가 강조되었던 것도 아니다. 

   “독일은 강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은 정당한 일이며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왔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는 맥락의 연설 중에 유독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대목만이 유명해졌다. 그 이유는 총리의 난민정책이 그만큼 격렬한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는 비판의 목소리에 직면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로부터 1년, 굵직한 신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란 과는 별개로 난민문제만을 위한 지면을 따로 마련하여 다루고 있고 시장에서 거리에서 피부가 가무잡잡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는 일도 이제 모두에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저 매체를 통해서 보았던 사람들과 어느새 우리(Wir)는 우리의 빈 의자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웃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 낯설다. 매일 들려오는 뉴스를 듣다 보면 두 문화나 종교가 어울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루하루 새삼 느끼게 된다. 

며칠 전 RBB 방송국에서는 조혼 문제를 다루었다. 독일 사람들의 눈으로는 중세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조혼 풍습이 시리아에는 아직도 존재하며 실제로 12세에서 16세 사이의 많은 여자어린이들이 10살 정도 연상의 남편과 심지어는 아이까지 데리고 독일로 들어왔다는 뉴스였다. 베를린에서는 접수된 100여건의 조혼 사례 중 아이가 없을 경우 18세 이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남편을 보호자로 인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르카나 니캅 문제는 이미 새롭지 않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는 이슬람 문화의 여성복장 이야기다. 한 문화 속에 존재하는 가치나 정당성을 무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악수를 청하고 쉴 새 없이 눈빛을 교환하는 독일 문화 속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결국 법정이나 관공서, 대중교통, 학교 등에서 부르카와 니캅 착용이 불법화되었다. 

   옳고 그름도 아니요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다만 다름에서 비롯되는 이런 충돌이 누구의 상식선에서 판가름 되어야 할까? 같이 살고자 하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다.
문득 얼마 전 TV에서 본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머리를 스친다. 우리 한국은 소원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은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해야만 한다. 해내야만 한다. Wir schaffen das

2016년 9월8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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