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16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16주 
제목: 독일의 할로윈(핼러윈으로 정정 2016)

를린의 가을은 회색 숨을 쉰다. 도시가 온통 회색 빛에 젖어 들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은 슈퍼마켓이며 백화점마저 시커멓게 도배를 하고 나섰다. 할로윈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All Hallows' Eve 줄여서 Halloween은 그 유래를 따라 가보면 꽤 역사 깊은 켈트 족의 명절이다. 다음 날인 가톨릭의 모든 성인 대 축일보다도 역사가 깊다면 깊다. 하지만 오늘날 할로윈의 모습이 그 깊은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할로윈은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독일에 들어왔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이라크가 쑥대밭이 되자 독일인들은 매년 열리던 대규모 카니발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화려한 가면과 의상을 입고 웃고 떠들며 파티를 즐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말 웃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카니발용 제품을 납품하던 완구 및 의류업체 관련 종사자들이 그들이었다. 일 년에 한번 대목을 보는 업종인 만큼 그 충격은 대단했다. 작은 회사들은 도산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국의 할로윈이다. 당시 독일에도 뿌리식물에 얼굴을 조각하는 비슷한 풍습이 있었고 이미 생산된 장신구며 화장품 그리고 의상들만 가지고도 할로윈 산업의 반 이상은 이루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장들은 즉시 추가 생산에 돌입했고 아시아 산 고무 탈이며 플라스틱 거미와 해골들이 다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적극적인 할로윈 홍보도 시작되었다.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영화나 출판물로 포장되어 할로윈은 급속도로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문화의 전파 속도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외형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의 할로윈이 그렇듯 한국에서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적당히 왜곡된 할로윈 파티가 열리고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여기서 필자는 오늘날의 할로윈이 본래의 종교적, 역사적 의미를 넘어 상업화될 대로 상업화된 수조 원 규모의 소비의 축제라는 점을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학부모들과 공유했던 생각이다. 유치원 때부터 몇 년간 매년 아이들의 파티 의상을 만들어 입히면서 원하는 대로 입혀 보내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흘낏거리는 의상을 사자니 하루치 즐거움의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한편 이제는 어른이 다 되어 할로윈 파티를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할로윈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좋은 면도 있다는 뜻이다. 성탄절이나 부활절과는 달리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라는 점이 그 중 하나며 또 어린아이들에게 귀신놀이만큼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드물다는 주장이다.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점이 없지는 않다. 모쪼록 할로윈이 이런 점마저 망각한 채 몇몇 잡귀들의 호화파티로 자리 잡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6년 10월27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15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15
주 제목: 독일 통일의 날의 풍경
녁 8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기차가 시내로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생기를 더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약간의 흥분과 또 약간의 알코올 덕분에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이 오늘이 평소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10월 3일, 오늘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된 날이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공식 행사 외에도 독일 전역에서 크고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물론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베를린에서는 요즘 건축물에 형형색색의 빛을 비추어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빛의 축제가 한창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기차가 시내 한복판을 지나갈 때쯤 되자 기차 안은 완전히 만원이 되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너나할것없이 맥주병을 하나씩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영국식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좀 전에 그곳에서 그것을 봤냐는 둥, 정말 멋지지 않았냐는 둥,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느냐는 둥, 어디에 가면 멋진 파티가 있을 거라는 둥, 깔깔거리며 마치 자신들 이외에는 모두가 풍경이라는 듯 그들만의 분위기에 심취에 있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그랬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 같은 날 조금 눈치 없는 관광객 몇 명에 신경을 쏟을 사람들도 없었다. 사람들은 한두 번 힐끗힐끗 눈길을 주고는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귀에 익은 구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나가라. 독일을 떠나라! 메르켈과 외국인은 독일을 떠나라!
   구호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목소리를 더해가며 반복되고 있었다. 기차 안에는 순식간에 정적 아닌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가 나기 시작한 곳을 응시했고 그곳에는 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조금 있자니 군데군데에서 사람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입 닥쳐! 조용히 좀 합시다!
   그러더니 어딘가에서 또 다른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당신들의 애국심은 높이 사는 바요. 하지만 데모는 지정된 장소에서 하시오. 행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들의 그 흉한 구호를 독일인의 구호라 착각할까 두렵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차 안은 고성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늘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독일 전역에서 벌어진 이와 같은 시위가 사람들의 마음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쉽다.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지며 동 서가 부둥켜안던 순간의 그 어마어마한 감격도 어느새 역사책의 한 귀퉁이로 사라져 간다. Deutschland einig Vaterland(우리의 조국은 하나) 26년 전 오늘 독일을 뒤흔들던 이 세 마디는 분명 독일인의 구호였다.

2016년 10월13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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