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20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0주 
제목: 망년(忘年)의 향기를 전하며


탁 위 노랗게 까불대는 촛불 밑에 오늘은 케이크 한 조각이 놓였다. 크리스트슈톨렌이다. „Christstollen(크리스트슈톨렌)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 먹는 대표적인 쿠흔이다.

   한국에 떡이 있다면 독일에는 „Kuchen(쿠흔)이 있다. 쿠흔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니 이런저런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케이크 가 가장 무난한 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마저도 외래어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문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쿠흔은 재료나 만드는 방법은 달라도 음식의 기능면에서는 떡과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 문화에서 떡이 그렇듯 독일 문화에서 쿠흔은 단지 간식거리가 아니다. 의미 있는 날에 최고의 격식을 갖추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기쁨과 풍요의 상징이며 나눔의 매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도 그 시기에 나는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듬뿍 담아서 정성스럽게 만들어낸다는 점 또한 떡과 다르지 않다.

   Stollen(슈톨렌)은 쿠흔의 한 종류로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고 꼭 크리스마스에만 먹는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 중에서 „크리스트슈톨렌이란 종류는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다. 생일 잔치나 다른 명절 때는 쓰이지 않다가 유독 크리스마스 때 많은 가정에서 크리스트슈톨렌을 굽기 때문이다. 크리스트슈톨렌의 모습은 아기예수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다 해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겉모습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리는 쿠흔이다. 

   안흥찐빵이나 천안의 호두과자처럼 크리스트슈톨렌 앞에는 항상 드레스덴이 붙는다. „슈톨렌이라고 하면 드레스덴을 떠올릴 정도이고 가정에서 구울 때도 대부분 드레스덴 지역의 전통방법을 따른다. 그 방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만들기 하루 전에 건포도 등 말린 과일을 따뜻한 럼주에 불린다. 다음날 미지근한 우유에 누룩을 풀어 따뜻한 곳에서 잘 발효시킨 후 밀가루와 버터 설탕 소금 등을 넣고 반죽한다. 20분 정도 잘 치댄 다음 준비해놓은 과일 껍질 절임, 견과류 등을 섞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발효과정을 거친다. 완성된 반죽은 형태를 잡아 180도에서 한 시간 가량 구워낸다. 
   과연 누구나 쉽게 만들 만한 케이크는 아니다. 게다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완성된 슈톨렌은 버터와 설탕파우더로 겉 표면을 마감한 후 잘 포장해 14일 이상 숙성시켜야 비로소 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는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누나 보다. 

   오늘 이웃집에서 크리스트슈톨렌 몇 조각을 보내왔다.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촘촘히 들어박힌 모습이 풍요롭다. „보시다시피 우리 집은 무탈합니다. 이웃도 안녕하시죠? 메리크리스마스! 이런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집 식탁 위에도 조촐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여기 또 한 해가 저문다. 올해도 우리처럼 타향에서 새해를 맞는 많은 분들에게 슈톨렌의 이 쿰쿰한 누룩 향기를 전하고 싶다.

2016년 12월 22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19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19
주 제목: 베를린에 산타 할아버지가 두 번 오시는 이유

늘은 유럽의 유명한 전설 한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옛날에 가난한 한 아버지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한 나머지 결혼을 시킬 수가 없자 아버지는 딸 셋을 모두 매춘부로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 교회의 주교는 그날부터 매일 밤 딸들의 방을 몰래 찾아가 창문으로 금 덩어리 하나씩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삼일 째 되던 날밤 주교는 결국 아버지의 눈에 뜨이게 되었다. 아버지가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니콜라우스라 대답했다. 성인 니콜라우스의 전설이다. 

   성 니콜라우스는 4세기 초 Myra(뮈라)지방, 오늘날의 터키 안탈리아 근방, 에서 활동했던 주교로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아 부유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성품 덕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전설 속에 살아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Nikolaus(니콜라우스)라는 이름은 줄여서 „Klaus(클라우스) 또는 Niklas(니클라스)라고도 불린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발음과 철자가 달라서 성 니콜라우스는 언어에 따라 Saint Nicholas, Sinterklaas 또는 Santa Claus가 되기도 한다. 지금쯤 몇몇 독자 분들께서는 무릎을 탁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들의 산타클로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베를린에서는 그의 축일을 기념해 매년 12월 6일이면 니콜라우스를 대신해서 부모들이 밤에 몰래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인 빨간 장화 속에 선물을 넣어놓곤 한다. 이 날은 „니콜라우스의 날이라 불린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치며 니콜라우스의 날은 많은 지역에서 12월 24일로 옮겨졌다.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에서는 성인들의 축일을 기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루터는 기쁨을 가지고 오시는 이는 „아기예수라고 강조하였지만 아무래도 손에 잡히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사람들에게 니콜라우스는 잊히지 않았다. 

   이후 많은 시인과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니콜라우스는 점차 환상 속 초상으로 변해갔다. 종교적 색채를 잃은 성직자의 엄숙한 제의는 우스꽝스러운 코트와 털모자가 되었고 충실한 머슴 Ruprecht(루프레히트)의 자리는 코가 밝은 사슴 루돌프가 차지했다. 

   상업화 또한 필수적인 수순이었다. 온갖 반짝이는 것들과 깜박이는 것들로 치장한 산타클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1930년대 초부터 코카콜라의 몽환적인 겨울 광고에 등장해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렇게 세기를 지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독일 땅을 밟은 산타클로스는 북극에서 왔다는 숱한 소문 속에 „Weihnachtsmann(바이낙츠만)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바이낙츠만은 독일 전역에서 12월 24일을 즈음해 활약해왔는데 최근 들어 상업화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환영 받지 못하는 곳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진실이 구겨지기 시작하는 곳에서 환상은 피어난다. 허구는 또 다른 허구를 낳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젠가 환상에서 깨어나는 습성이 있다.

2016년 12월 8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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