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22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2주 
제목: 모른다, 모른다, 나는 맹세코 저 사람을 모른다

는 체하기보다는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자고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며 살아왔는데 요즘처럼 모른다는 말이 싫어지기는 내 평생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부터 귓가를 맴도는 멜로디가 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나오는 „Erbarme dich로 시작되는 아리아다. 아마도 얼마 전 트럭테러가 났던 크리스마스 시장에 다녀온 이후부터인 것 같다. 그 시장 중심에 서 있는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는 수년 전 부활절에 이 곡을 처음 라이브로 들었던 곳이다. 그 날의 감동은 도무지 바랠 줄을 모르고 나를 따라 나이를 먹어간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작품번호 244번(BWV244)은 부활절 단골 레퍼토리다.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당하게 될 수난을 예언하는 장면에서부터 무덤에 묻히는 장면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는„Erbarme dich라는 노래는 알토 아리아로 현대에는 주로 여성이 부르지만 실은 베드로의 노래다. 베드로가 이 슬픈 노래를 부르게 된 이유는 그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바흐는 당시의 상황을 마태수난곡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끌려가는 예수를 따라온) 베드로가 성 뜰에 앉아 있는데 한 하녀가 다가와 당신도 갈릴래아에서 온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소? 라고 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라며 첫 번째 거짓말을 한다. (당황한 베드로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는데) 성문 앞까지 가자 다른 하녀 한 명이 그를 보고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이 사람도 나사렛에서 온 예수와 함께 있었소!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을 모르오.“ 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말한다. (이 부분은 합창으로 표현되어있다) „과연 너도 그들 중에 하나다. 네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맹세코 저 인간을 모른단 말이오.“ 라면서 저주하듯 펄펄 뛰며 세 번째 거짓말을 하기에 이른다. 잠시 후 어디선가 닭이 운다. 그 소리와 함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모른다 할 것이다는 예수의 말씀을 떠올리고 뛰쳐나가 통곡하기 시작한다.

   바이올린 한 대가 조용히 일어나 „Erbarme dich의 전주를 시작하는 곳이다. 이어지는 노래의 가사는 이런 뜻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내 눈물을 보소서. 나의 마음과 눈이 당신 앞에서 통곡하나이다.”
   언젠가 한번쯤은 거짓말쟁이였던 우리들 중에 베드로의 눈물 앞에 덤덤히 앉아있을 자가 있을까? 가사는 몇 마디 되지 않는데 노래가 끝날 무렵에는 손발이 저려온다. 

   중간에 나오는 합창부분에서도 바흐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고 있다. „네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네 말만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자 너, 너만이 그 사실을 모른다.
   „Erbarme dich는 „에어바메디히로 발음되며 용서나 자비, 동정을 구할 때 쓰는 말이다. 유튜브 등에서 들을 수 있다.

2017년 1월 19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21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1
주 제목: 베를린 곰처럼 일어나다

를린 살이 20여 년 중에 2016년처럼 유럽 공동체란 말이 실감나던 해는 없었다. 2016년 3월 23일 브뤼셀 테러가 있던 다음날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까맣고 노랗고 빨간빛이 비추었다. 벨기에 국기였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광장(Pariser Platz)은 그 불빛 속에서 작은 벨기에가 되어 추모 객을 맞았다. 꽃과 양초를 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희생자들을 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파리의 에펠탑에도 벨기에의 삼색기가 빛으로 드리워졌다.

   그로부터 몇 달 후 7월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여름휴가와 축제를 즐기고 있던 유럽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그날의 에펠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냘파 보였다. 자국의 3색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간신히 서있는 듯한 그 모습은 마치 상복을 입은 여인네 같았다. 베를린 속 파리광장도 역시 파랗고 하얗고 빨간 슬픔에 잠겼다. 그날은 유독 많은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응시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쩌면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눈동자 속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저곳에 독일 국기가 비추일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2016년 12월 20일, 브란덴부르크 문은 결국 까맣고 빨갛고 누런빛에 휩싸였다. 테러리스트 아니스 암리가 탄 검은 트럭이 베를린의 평화로운 크리스마스시장에 난입해 12명의 무고한 목숨을 짓밟고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테러가 훑고 간 자리는 상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상했던 대로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 동안 상상만 했던 테러 당한 도시의 참담함과 베를린의 실제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총리 메르켈의 움직임은 민첩했고 시민을 향한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의연했다. 물론 기다렸다는 듯 정치적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들로 인해 곳곳에서 거센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다수는 비판보다는 먼저 수습을 원했다. 테러 다음날 시내 크리스마스시장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아주 합당하고도 명백했다. 

   „우리는 내일 하루 시장들을 폐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뜻입니다.“ 
약속대로 하루가 지나자 크리스마스시장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테러가 일어났던 시장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복구되어 발을 맞췄다.
   „너희들은 도시를 잘못 골랐어. 베를린은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동네야. 아직도 골목골목의 양로원에는 널브러진 시체들 위를 걸어오신 어른들이 살아있지. 우리는 이미 지옥을 알아. 그까짓 트럭한대로 우리를 넘봐? 베를린을? 잘 들어. 우리는 부상자를 치료할 거고 사망자들을 묻을 거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하지만 절대, 오늘을 잊진 않을 거야.“

   빌트(BILD)지에 실린 한 시민의 메시지였다. 테러 이후 나는 20년을 살면서도 본적 없는 도시의 숨은 저력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베를린이 마치 한 마리 거대한 곰처럼 툭툭 털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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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5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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