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28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8
주 제목: 오스터하제와 오스터아이

를린에는 요즈음 부활절 방학이 한창이다. 부활절은 크리스트교의 축일이지만 베를린에서는 법정공휴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종교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부활절을 쇤다. 특히 1월 말에서 2월 초에 걸쳐 약 일주일간의 짧은 겨울방학을 보낸 학생들에게는 두 달여 만에 또 한 번의 방학이 찾아오는 셈이다.

   부활절은 날짜가 해마다 바뀐다. 매년 3월 21일 이후 첫 번째 뜨는 보름달을 기준으로 바로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Ostersonntag(오스터존탁)이라고 해서 축일로 정하기 때문이다. 오스터존탁은 부활의 일요일이라는 뜻이다. 이 날이 바로 장사한지 삼 일째 되는 날이자 예수가 부활하신 날이 된다. 
   이로부터 나흘 전,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눈다. 이 날을 성스러운 목요일 이라는 뜻으로 Gründonnerstag(그륀도너스탁) 이라고 부르며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가린 채 종소리와 오르간연주가 없는 조용한 미사를 드린다. 반면, 관공서와 슈퍼는 몰려든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는 날이기도 하다. 바로 다음 날부터 공휴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음 날인 Karfreitag(카프라이탁)은 „비통한 금요일이다. 이 날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무덤에 묻힌 날로 크리스트교인들 에게는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절이란 기쁘기 그지없는 축제 속에 섞인 이 비통하기 그지없는 금요일덕분에 부활절은 „고요한 축제라고 불린다. 이 날에는 거의 모든 관공서나 상점들이 문을 닫을 뿐 아니라 무도회나 댄스파티, 춤이 섞인 공연이 금지된다.

   토요일에는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연다. 그리고 다음 날인 부활절, 그 다음 날인 „Ostermonntag(오스터몬탁)“까지가 공휴일이다. 오스터몬탁은 예수의 두 제자가 엠마우스로 가는 길에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날로 그 기쁜 소식을 여기 저기 전하며 함께 나누는 날이라고 한다. 부활절 기간 동안 사람들은 만났다가 헤어질 때 „Frohe Ostern(프로에오스턴)“ 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즐거운 부활절이라는 뜻이다. 

   즐겁기만 한 부활절은 단연 어린이들 차지다. 집집마다 오스터하제라고 불리는 토끼가 숨겨놓았다는 오스터아이라는 달걀을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일 년에 한번 토끼가 바구니에 달걀을 가득 담아와 여기저기 숨겨놓는다는 허술한 시나리오에 반해 어른들이 숨겨놓은 오색찬란한 달걀모양의 초콜릿을 찾아 흙투성이가 되어 정원을 누비는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다 못해 애절하다. 운이 좋으면 가끔 오스터하제도 만날 수 있다. 발견되는 즉시 초콜릿으로 변해버린다는 금빛토끼 한 마리를 손에 넣고 환하게 피어나는 아이들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수선화 같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마음으로 부활절을 쇠는 사람이든 덩달아 쇠는 사람이든 말이다. 그 어떤 설교보다도 감동적인 이 미소야말로 부활절의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독일에서 부활절은 종교를 넘어 문화로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4월 20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베를린 살이27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7 
주 제목: Frühlingsgrüße aus Berlin (베를린에서 보내는 봄소식)

  은 패딩 파카차림에 목이 긴 양말을 단정히 올려 신고 학교로 향하는 큰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작은 아이가 반팔 티셔츠 바람으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온다. 요 며칠 오후에 집에 오면서 외투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 오더니 이제 아예 외투 따위 필요 없다는 심산이다. 아무리 그래도 반팔은 아직 너무 춥지 않느냐고 했더니 날보고 도리어 엄마는 밖에 나가 보지도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 그래. 4월이다. 날씨도 어차피 제 맘대로니 너도 네 멋대로 살아라 하며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닫았다.

   베를린의 4월 날씨는 여름에서 늦가을을 넘나든다. 지금 날씨가 이렇다 해서 한 시간 후에도 이러리란 보장은 없다. 하늘이 실성한 듯 변덕을 부려야 아 봄이구나 싶을 정도다. 지금쯤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목도리를 눈 밑까지 올려 두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팔에 반바지 차림도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변덕스런 날씨만큼이나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들갑도 어떤 때는 참 부질없어 보인다. 어떤 이는 죽저사저 현재를 살고 어떤 이는 또 죽어라고 미래를 산다. 그래 봤자 옳은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집 창문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다. 웬만큼 고개를 젖혀서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커서 내가 일본어로 키다리란 뜻의 노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노뽀는 벌써 몇 달 전 작은 봉우리들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그 작은 봉우리들을 발견했던 날에는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어린 생명에 눈이 쌓이는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혼자 저 나무가 미쳤나 하고 중얼거렸다. 오늘 보니 어느새 노뽀의 봉우리들은 싹을 틔워 잎사귀들을 한껏 펼치고 그것도 모자라 이곳저곳에서 푸른 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어내고 있다. 영락없는 봄날의 한 그루 행복한 나무의 자태다. 이제야 노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모든 것에는 시간이 있나 보다. 아침에 춥고 오후에 더워도 꿋꿋이 봄을 그리고 서있는 노뽀가 오늘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동네 꽃가게에서도 화분들을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단연 Stiefmütterchen이 사람들의 발끝 가장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Stiefmütterchen“은 한국말로 계모, 즉 새엄마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큰 꽃잎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해서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Männertreu“라는 꽃 이름도 재미있다. 한국말로 의역해서 „남자의 사랑 정도의 뜻이 된다. Lobelia erinus라는 학명을 가진 이 꽃은 한 여름 불타고 꺼져버리는 남자들의 사랑처럼 6월부터 7월까지만 잠시 피었다가 져버리는 바람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문득 지금쯤 한국에 만발했을 벚꽃이 그립다. 차가운 암흑 속에서 3년을,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한 겨울을 보낸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제는 좀 여유로운 봄날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 하물며 여기 베를린에도 봄이 왔는데......

2017년 4월 6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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