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27

문패: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27 
주 제목: Frühlingsgrüße aus Berlin (베를린에서 보내는 봄소식)

  은 패딩 파카차림에 목이 긴 양말을 단정히 올려 신고 학교로 향하는 큰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작은 아이가 반팔 티셔츠 바람으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온다. 요 며칠 오후에 집에 오면서 외투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 오더니 이제 아예 외투 따위 필요 없다는 심산이다. 아무리 그래도 반팔은 아직 너무 춥지 않느냐고 했더니 날보고 도리어 엄마는 밖에 나가 보지도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 그래. 4월이다. 날씨도 어차피 제 맘대로니 너도 네 멋대로 살아라 하며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닫았다.

   베를린의 4월 날씨는 여름에서 늦가을을 넘나든다. 지금 날씨가 이렇다 해서 한 시간 후에도 이러리란 보장은 없다. 하늘이 실성한 듯 변덕을 부려야 아 봄이구나 싶을 정도다. 지금쯤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목도리를 눈 밑까지 올려 두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팔에 반바지 차림도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변덕스런 날씨만큼이나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들갑도 어떤 때는 참 부질없어 보인다. 어떤 이는 죽저사저 현재를 살고 어떤 이는 또 죽어라고 미래를 산다. 그래 봤자 옳은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집 창문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다. 웬만큼 고개를 젖혀서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커서 내가 일본어로 키다리란 뜻의 노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노뽀는 벌써 몇 달 전 작은 봉우리들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그 작은 봉우리들을 발견했던 날에는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어린 생명에 눈이 쌓이는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혼자 저 나무가 미쳤나 하고 중얼거렸다. 오늘 보니 어느새 노뽀의 봉우리들은 싹을 틔워 잎사귀들을 한껏 펼치고 그것도 모자라 이곳저곳에서 푸른 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어내고 있다. 영락없는 봄날의 한 그루 행복한 나무의 자태다. 이제야 노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모든 것에는 시간이 있나 보다. 아침에 춥고 오후에 더워도 꿋꿋이 봄을 그리고 서있는 노뽀가 오늘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동네 꽃가게에서도 화분들을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단연 Stiefmütterchen이 사람들의 발끝 가장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Stiefmütterchen“은 한국말로 계모, 즉 새엄마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큰 꽃잎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해서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Männertreu“라는 꽃 이름도 재미있다. 한국말로 의역해서 „남자의 사랑 정도의 뜻이 된다. Lobelia erinus라는 학명을 가진 이 꽃은 한 여름 불타고 꺼져버리는 남자들의 사랑처럼 6월부터 7월까지만 잠시 피었다가 져버리는 바람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문득 지금쯤 한국에 만발했을 벚꽃이 그립다. 차가운 암흑 속에서 3년을,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한 겨울을 보낸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제는 좀 여유로운 봄날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 하물며 여기 베를린에도 봄이 왔는데......

2017년 4월 6일 이재인
베를린 살이는 2016년 3월 ~2017 5월까지 한겨례 서울&에 연재 된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의 미 수정 원본입니다. 블로그 게재일은 2017년 9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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