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39: 바위산 호랑이들

숭이가 살고 있음 직한 흰 바위산 위에 몇 십마리의 호랑이들이 있었다. 나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오렌지 빛 그들의 털은 윤기가 가득했고 모두 건강해 보였다. 호랑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는가 하면 어슬렁 거리거나 길게 누워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따금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것 들도 있었지만 곁눈질 정도였고 이내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리곤했다. 그들과 그리 친한것 같지 않았던 내게도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은 행동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이방인정도인듯 했다.
그러다가 그중 한마리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내가 있는 바위로 뛰어 올랐다. 나는 흠칫 놀라 몇 발짝 물러섰다. 그 틈을 타서 그 호랑이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포효했다. 하지만 그 이글거리는 눈빛은 왠지 애처로웠다.

이꿈은 꾼지 단 며칠후 도착한 소비자 불만 메일로 실현된듯 싶다. 그러나 그 클레임은 너무 근거가 빈약하고 공격적인데다가, 소비자를 상대해서 취급 제품을 보호하고 대변해 주어야할 총판측에서 오히려 본사를 상대로 소비자를 대변하는 꼴이 되어 거기에 분노한 나는 아주 빡빡하고 얄짤없는 설교조의 회신을 총판에 보내게 되었고 그것으로 비지니스 관계가 깨지는 결과를 가져올것 같다. 

보고 싶은 아들 얼굴

샤가 11학년 직업 교육때, 그러니까 2016년 겨울, 양로원에 출근한지 이틀째 되던 날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 보다 대체로 조용하고 생각도 더 젊은 것 같아. 몇몇 할머니들은 어찌나 이야기하길 좋아하는지 한번 시작하면 한참 듣고 있어야 되요. 대부분 2차 대전 때 이야기들인데 어떤 할머니는 소련군 이야기를 하고 어떤 할머니는 독일과 폴란드군 이야기를 해. 듣고 있다보면 양로원이 마치 한권의 책 같아요. 한 할머니가 챕터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할머니가 다음 챕터를 시작하고…
이렇게 말하는 16살 짜리의 얼굴이 얼마나 내 마음을 위로하던지, 엄마 수고 하셨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일기장에 담아 놓았었다.

어느 50대 아줌마의 전생에 대한 짧은 생각

금 보다 어렸을때는 때때로 전생을 생각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그 생각의 대부분은 전생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과 함께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때는 잠시, 전생에 분명 일본인이었을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일본어가 무척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작문을 채점하신 한 튜터 선생님은 "오랫동안 외국어만 쓰던 일본 사람이 쓴것 같다"는 한 줄 메세지를 남겨놓으시기도 했다. 한 발 들인 적도 없는 나라의 언어에 숨은 억양이 왜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그들의 옛 노래는 왜 또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왜 다른 언어처럼 외우고 또 외우지 않아도 기억나고, 기억나지 않아도 찍으면 시험 문제 정답을 맞추는지… 이런 기이 현상의 원인으로 전생이란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전생이란 단어의 개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나에게 나 스스로를 하루하루 작아지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인간이라는 것 하나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고 또 태어날만큼 그리 대단하고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은 나의 전생에 대한 궁금증을 꽤 빠른 속도로 부식시켰다. 인간은 그저 무한한 역사 속 찰나의 구성원일 뿐, 한 인간의 삶은 스스로에게 중요하듯 역사에게도 중요하지는 않다. 결국 너와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잠시 동안 역사를 이루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잠시 동안…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보니 오히려 세상이 한층 공평하게 보였다. 누구는 가지고 누구는 가지지 못한것, 누구는 멋지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것에서 부터 심지어는 하루 아침에 큰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것 까지도 더이상 그리 불공평하거나 있을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어떤 모습으로든 잠시 역사에 함께 했다가 사라진다는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진실이니까.

대부분의 우리는 스파게티 나폴리에 들어간 올리브유를 만든 올리브 한 알갱이 보다도 더 작은 역할을 담당하며 이 역사속을 살고 있다. 그 미미한 존재의 이유를 위해 몇 십년을 인내하며 수고한다. 가끔씩은 옆에 사는 토마토를 부러워하기도하고 비교에 늪에 빠져 탄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토마토인들, 밀인들, 마늘인들, 바질인들 결국 존재의 이유는 하나다. 스파게티 한 접시를 만들어내고 다음 접시 스파게티를 만들 후손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

이런식으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것을 잠시 멈추고 세상의 눈으로 나를 보니 전생이란 것이 참 인간 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만약 내가 과거에 여러번 이 역사속을 왔다 갔다한들 그 이유는 역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순 있으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와 함께 천천히 내 전생에 대한 궁금증은 일상의 잡다한 생각들 속에서 사라져갔다.

꿈38: 동그란 반짝임



방이라도 개츠비가 걸어나올듯한 멋진 정원에서 파티가 열린듯 했다. 나무 벤치에 가까이 다가서자 어린 아이 하나가 엄마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를 안아 올려서 꼭 껴안고 그 정원을 거닐었다. 발을 디디는 곳 마다 풀 잎이 흰빛을 머금고 환하게 빛났다. 
잠시후 폭죽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 일제히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응시하며 서성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쨍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발 앞으로 떨어졌다. 아이를 한 팔로 꼭 감싸고 조심스레 무릎을 굽혀 발치를 살펴보니 100원 짜리 동전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주우려고 하는 순간 또 하나의 폭죽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소리와 함께 100원 짜리 동전 뒤에서 땅 속에 한 귀퉁이 몸을 숨긴 500원 짜리 동전 하나가 동그랗게 흰 원을 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Perilla shadow



제 쓸 수 있을까? 쓰고 싶다. 가슴 뛰던 순간들이 먼지 처럼 쌓여 구석에 나뒹굴지라도… 훗날에 내가 이곳에서 만나게 될 나는 지난 번 보다는 좀 더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크고, 그저 많고, 뛰어나고, 희한하고, 그래서 유명하게 됨을 좆는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아도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제는 나의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혼신의 힘을 다해 키운 아이들은 이제 모두 독립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쉴새없이 부족하다고느꼈지만 그래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그런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데도 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 씨앗으로 수경재배를 시작했다. 새 생명들이 속속 눈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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