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50대 아줌마의 전생에 대한 짧은 생각

금 보다 어렸을때는 때때로 전생을 생각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그 생각의 대부분은 전생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과 함께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때는 잠시, 전생에 분명 일본인이었을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일본어가 무척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작문을 채점하신 한 튜터 선생님은 "오랫동안 외국어만 쓰던 일본 사람이 쓴것 같다"는 한 줄 메세지를 남겨놓으시기도 했다. 한 발 들인 적도 없는 나라의 언어에 숨은 억양이 왜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그들의 옛 노래는 왜 또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왜 다른 언어처럼 외우고 또 외우지 않아도 기억나고, 기억나지 않아도 찍으면 시험 문제 정답을 맞추는지… 이런 기이 현상의 원인으로 전생이란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전생이란 단어의 개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나에게 나 스스로를 하루하루 작아지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인간이라는 것 하나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고 또 태어날만큼 그리 대단하고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은 나의 전생에 대한 궁금증을 꽤 빠른 속도로 부식시켰다. 인간은 그저 무한한 역사 속 찰나의 구성원일 뿐, 한 인간의 삶은 스스로에게 중요하듯 역사에게도 중요하지는 않다. 결국 너와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잠시 동안 역사를 이루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잠시 동안…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보니 오히려 세상이 한층 공평하게 보였다. 누구는 가지고 누구는 가지지 못한것, 누구는 멋지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것에서 부터 심지어는 하루 아침에 큰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것 까지도 더이상 그리 불공평하거나 있을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어떤 모습으로든 잠시 역사에 함께 했다가 사라진다는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진실이니까.

대부분의 우리는 스파게티 나폴리에 들어간 올리브유를 만든 올리브 한 알갱이 보다도 더 작은 역할을 담당하며 이 역사속을 살고 있다. 그 미미한 존재의 이유를 위해 몇 십년을 인내하며 수고한다. 가끔씩은 옆에 사는 토마토를 부러워하기도하고 비교에 늪에 빠져 탄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토마토인들, 밀인들, 마늘인들, 바질인들 결국 존재의 이유는 하나다. 스파게티 한 접시를 만들어내고 다음 접시 스파게티를 만들 후손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

이런식으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것을 잠시 멈추고 세상의 눈으로 나를 보니 전생이란 것이 참 인간 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만약 내가 과거에 여러번 이 역사속을 왔다 갔다한들 그 이유는 역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순 있으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와 함께 천천히 내 전생에 대한 궁금증은 일상의 잡다한 생각들 속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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